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자녀가 있는 부모나 지금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 그중에서도 미국 대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학 순위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 어차피 블로그라는 게 내 생각을 담은 글을 남기는 곳이라고 할 때, 미국 대학교의 평판, 순위, 인식 등에 대해서 내가 아는 지식이나 의견을 쓰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과 교육에 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내가 항상 하는 얘기의 일부이긴 한데, 조금 정리해서 써보려 한다.
1. 대학 순위
많은 책자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꾸준히 언급하는 대학 순위에 관한 얘기이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은 하버드 (Harvard)인데 이 하버드 역시 역사로 따지면 영국의 가장 오래된 대학인 옥스퍼드 (Oxford) 대학에 비하면 한참 신생학교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국력을 뒷받침한 탓인지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이라고 하면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Cambridge)보다 하버드 대학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 것만 봐도 대학의 명성이라는 게 전통적이지 않다는 게 분명해 보인다. 현대 대학 중 가장 오래된 대학이라는 이탈리아의 볼로냐 (Bologna) 대학은 어느 누가 다녔는지 다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 정도이니까 이 점은 더욱더 분명해 보인다.
'아이비 리그 (Ivy League)' 라고 하는 미 (북)동부 지역의 명문대 스포츠 리그가 미 명문 사립대학의 대표적인 집단으로 꼽히는데 이건 일반인들에게는 '아이비리그'가 하버드 (Harvard), 예일 (Yale), 스탠포드 (Stanford)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순위가 아닌 '명성'이나 '유명도'로 따졌을 때, 아이비리그의 대학 중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Princeton) (누가 뭐라든 아이비리그 대학 중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세 학교)를 제외하고는 다른 아이비리그 소속 대학들은 다른 유명대학에 비해서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다. 다트머스 (Dartmouth), 브라운 (Brown), 펜실베이니아 (Pennsylvania), 컬럼비아 (Columbia), 그리고 코넬 (Cornell) 대학은 물론 한 번쯤은 들어봤겠지만 아이비리그가 아닌 MIT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나 스탠퍼드 (Stanford)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캘리포니아 대학교 시스템의 몇몇 유명 캠퍼스 (예: UC Berkeley와 UCLA)가 경우에 따라선 훨씬 더 유명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대학 순위라는게 좋은 대학을 가고 싶은 열망과 대학을 졸업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기 때문에 중요할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공부 잘하고 (고등학교 성적과 상당히 높은 SAT나 ACT 성적), 운동도 좀 하고, 학교 공부 외에 여러 가지 활동 경력들이 받쳐준다면 흔히 말하는 유명대학에 분명 한 두 군데는 붙을 수 있으니 미국의 대학이라는 게 선택의 폭이 넓어서 정말 좋은 점이 있다.
미국은 대부분의 다른 나라와 다르게 흔히 말하는 유명 대학들이 대부분 사립대학이어서 (이건 개인적으로 미국의 교육정책의 폐해라고 생각한다) 높은 학비를 감당할 수 있거나 경제 사정을 감안한 학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경우라는 제한이 있긴 하다.
내가 주로 하는 조언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대학만 입학해도 아니면 졸업해도 할 수 있는 일이면 본인의 능력의 최대치에 맞는 대학을 가는게 제일 좋고, 그게 아니고 의대, 법대, 경영대, 아니면 이공계 중에서도 석박사 이상의 학력을 요구하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면 본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대학 (즉, 대학 4-5년을 성적 잘 받으면서 다닐 수 있는 곳)이 가장 좋을 거라고 한다.
2. 미국 대학은 들어가기는 쉬운데 졸업하기가 어렵다?
이건 정말 내가 동의하지 않는 말이다. 아직도 많은 한국 부모들이나 한국의 미디어에서 이런 식의 얘기를 사실인 것처럼 보도할 때면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얘기를 하는지를 정말 알 수가 없다. '근거'라는 게 통계자료를 보면 입학한 뒤 4년 만에 졸업하는 학생들의 퍼센티지를 가지고 얘기하는 것 같지만, 미국 대학에서 공부를 하다 보면 중간에 일을 하거나 좀 쉬거나 졸업할 필요가 없이 인생이 바뀌어 버리는 게 드문 일이 아니기 때문에 꼭 졸업을 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공부가 어려워서 대학 졸업을 못하는 경우는 정말로 드문 일이다. 대신 미국의 생활이 대부분 단조로운 탓에 미국의 대학들에서 대부분은 학생들이 학기 도중에도 수업에 웬만큼 잘 참석하고 공부량도 꽤 주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 대학생활들에 비해서 좀 빡빡해 보여서 이런 얘기가 생겨난 것 같다. 통계적으로도 앞서 얘기한 유명 사립대학 같은 경우는 4년 내 졸업하는 비율이 사실 엄청 높은데 그 이유는 대부분 그런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경제적인 문제도 적고 (경제적 지원을 받거나 열심히 일하면서 다니거나 하는 경우도 해당된다) 학비가 아주 비싸서 오래 학교에 다닐 동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대학이라는 게 대부분은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이 몰려있는 곳이라서 (한국이든 미국이든 마찬가지다) 경쟁을 하려면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대학에서는 어디나 힘든 건 마찬가지다.
그리고 들어가기는 쉽다는 얘기도 전혀 근거 없는 얘기다. 탑 수준의 학교들은 미국 대학의 경쟁률이 10대 1, 20대 1 정도인데 그것도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이 모두 다 지원했다고 가정한다면 정말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확률은 정말로 낮다. 그리고 유명 대학일수록 입학생들의 선발하는 기준이 들쑥날쑥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것들, 성적, 과외활동 등이 다 우수하다고 가정할 때) 에세이를 평균 이하로 썼다거나 그런 걸로 주관적인 기준이 많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오히려 요즘 보면 한국대학들이 졸업하기가 더 어려운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취업전쟁이 너무나 극심해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려면 필요 이상의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3. 명문 주립대
미국에는 유명도로 따졌을 때 아이비리그의 사립대학들이나 다른 유명 사립대학들 (MIT, 스탠퍼드, 시카고 (University of Chicago), 노스웨스턴 (Northwestern University), 듀크 (Duke University), 밴더빌트 (Vanderbilt University), 에모리 (Emory University), 라이스 (Rice University), 칼텍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존스홉킨스 (Johns Hopkins University), 조지타운 (Georgetown University), 그리고 윌리엄스 (Williams College), 앰허스트 (Amherst College), 스와스모어 (Swarthmore College) 같은 유명 리버럴 아츠 대학들) 만큼이나 아니면 더 유명한 주립대학교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미시건 대학교 앤아버 캠퍼스 (University of Michigan),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캘리포니아 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채플힐 캠퍼스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 버지니아 대학교 (University of Virginia) 같은 곳이 대표적인 학교들이다. 이들 '명문' 주립대학교들은 주립임에도 불구하고 그 명성에 걸맞게 많은 타주의 학생들이 지원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은 이들 대학들도 단순히 여러 명문 사립대학들과 경쟁하는 학교일 뿐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이 규모가 꽤 큰 학교들이라서 같은 학교 내에서 학생들의 수준의 차이가 조금 더 벌어져 있을 수 있지만, 특히 대학원에 진학할 때는 앞서 얘기한 명문 주립대 말고도 웬만한 학문적으로 인정받는 (즉, 학문적인 명성이 있는 교수들이 꽤 있는) 대학 출신이고, 그리고 충분히 좋은 대학 성적이 있으면 그다지 차별받는 일이 없다. 비싼 사립대학을 나오면 좋은 점은 대학 동기들이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안 출신이 많다는 것, 집안 환경 탓이나 비싼 학교를 다닌 탓에 직업을 가질 때 연봉을 좀 더 주는 종류의 직업들을 선택하는 확률이 좀 더 높은 것 등이다.
그렇지만 입학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주립대학들 역시 경쟁이 심해지면 심해질 수록 유명 사립대학에 비해서 더 쉽다고는 하기가 힘들다. 그러니깐 그냥 좋은 학교를 가고 싶은 열망이 있으면 주립이든지 사립이든지 어느 곳에서 나온 순위에 따라 줄 세워져 있는 리스트를 참조하던지 그냥 입학요건을 잘 파악한 뒤 여러 군데 원서를 넣고 기다리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학비를 더 걷을 수 있기 때문에 다는 아니지만 오히려 타주에 있는 주립대학에 지원을 하거나 해외지원자들에게 입학이 좀 더 용이한 경우도 있으니 유명학교를 가는 게 목적이라면 이 방법을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와 비슷하게 '아이비 리그'나 유명 사립대학이 목표라면 제일 유명한 아이비 리그의 세 학교 말고도 다른 곳에 원서를 여기저기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웬만한 명문 주립대를 갈 만한 성적이나 다른 경험들이 있으면 유명 사립대들 중 한 군데 정도는 붙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4. 대학원 연구역량 순위는 학부 순위와 별개다.
이거야 말로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정말로 대학 순위를 선정할 때는 객관적인 기준이라는게, 입학생들의 고등학교 등수, SAT/ACT 점수, 경쟁률 (이 중에서 입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과외활동이나 에세이는 정량화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을 제외하고는 학생 대 교수 비율이라던지 교수/연구원들의 연구역량 (연구비 규모, 연구의 질 - 좋은 저널에 논문 기제, 유명한 상들의 숫자, 유명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숫자), 동문들이나 독지가들의 후원금 규모 등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정량적인 기준은 역시나 연구의 질이다. 연구의 질이라는 건 교수들의 역량과 대학원생, 포스트닥이나 다른 연구원들의 수준에 따라 대부분 결정되니깐 학부생들 교유과는 정말로 동떨어져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반적으로 발표되는 순위에서 또 가장 중요한 평가 자료는 대학교수들이 자기 학교를 포함한 다른 학교를 어느 정도로 생각하는 인식이다. 국제 학회에서 좋은 발표를 많이 하는 학교, 유명 교수가 여기저기에 빵빵 터뜨려주는 것, 내 분야에서 가장 잘 나가는 교수들이 있는 학교들, 이런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자료가 대학 순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학부생들에게는 연구역량이 뛰어난 학교를 다니면 학부생 시절에 좋은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더 크기 때문에 좋은 점은 분명히 있지만 이런 연구역량이 반드시 학부생들의 질 (교육의 질이나 졸업 후 진학, 취업의 결과) 과 반드시 정비례하지는 않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존스홉킨스 (Johns Hopkins - 'Johns'다 'John'이 아니다) 대학은 정말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의대 (의학대학원), 병원, 보건대학 (School of Public Health)를 가지고 있는 학교인데 의학대학원을 가고 싶은 학생들이 존스홉킨스 학부에 가면서 왠지 '난 최고의 대학을 다니고 있어'라고 어쩌다가 생각하는 경우다. 존스홉킨스 대학 정말 좋다. 하지만 존스홉킨스 의학대학원을 진학할 때 존스홉킨스 학부생들이 혜택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학부시절부터 의학 공부에 대한 의학 연구에 대한 경험을 정말로 하고 싶으면 존스홉킨스 대학은 최고의 대학임에는 분명하다.
5. 정리
정리를 해보자면 한마디로 얘기했을 때 대학을 결정할 때 나중에 어떤 직업을 할 것인지 조금은 생각해보면 어떤 대학을 갈 것인지 결정하기가 조금은 쉽다는 점. 하지만 이마저도 인생을 길게 보면 그다지 추천하지는 않는다. 정말로 난 꼭 '변호사'가 될거야, '의사'가 될 거야 정도가 아니면 대학에 대해서 조금은 오픈된 마인드를 가지고 알아볼 만큼 알아보고 재정적인 여유와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한에서 여러 군데 많이 찔러보는 게 좋을 것이다. 너무 한 곳만 가고 싶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어질 수가 있으니깐 초이스를 다양하게 가져가는 게 부모나 학생 입장에서 가장 좋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왠만하면 본인의 수준에 맞는, 너무 과하지도 않은, 너무 쉽지도 않은 비슷한 학생들이 진학하는 곳이면 제일 좋을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이 좀 더 잘 나오고, 좀 놀면 성적이 조금 떨어지는 게 정신건강에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괜히 이것저것 부풀려 수준보다 훨씬 뛰어난 학생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운이 좋게 진학했다 하더라도, 그리고 '졸업'을 어떻게 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곳에서 학창생활은 정말로 많은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6. 그 외의 것들
개인적으로는 대학에서 배우는 학업의 수준, 질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대학생활 중에 겪어야 하는 삶의 질도 상당히 중요하다. 시골생활이 너무나도 익숙한 사람이 갑자기 대도시 한복판에 있는 대학을 가면 힘들어질 수가 있을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가 있다. 그리고 얼마나 대학 캠퍼스가 아름다운지 삭막한 지, 대학의 스포츠 팀들이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도 대학생활 삶의 질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칠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대학들은 어딜 가든지 캠퍼스는 정말 예쁘다. 그래서 여러 군데 다녀볼 수 있으면 그 기분을 어느 정도 느껴볼 수가 있기 때문에 정말로 추천한다. 직접 가 볼 수가 없다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사진, 비디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자기네들 학교 소개 비디오들이 많다) 등을 참조해보자. 나도 이런저런 이유로 어디 좀 유명한 학교가 근처에 있으면 일 관계로 어딜 갔을 때 꼭 방문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