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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방법론

by 노블리스트 2016. 9. 5.

Chapter 3. 방법론

 

·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것은 좋던 나쁘던 결과가 있어야 논의가 가능한 것이니 아무런 결과를 내놓지도 못하고 과정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은 간단히 얘기해서 헛소리일 가능성이 99퍼센트다. 

 

성장기

 

그 당시는 물리학과, 전자공학과, 법학과 등등이 왠만한 의예과, 치의과 등등에 비해서 훨씬 더, 아니 조금 더 조명을 받던 시절이었다. 대학 입학 학력 고사가 치러질 때마다 고득점자들이 이런 학과들로 진학하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봐온 영재는 괜한 객기같은 물리학에 대한 어떻게 보면 로망이 있었다.

 

본인이 어떤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가졌는지는 의문이 들던 시기였다. 사실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 저것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학교 공부는 영 관심이 없던 시절이지만,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부모님과 굉장히 깨어있던 환경 탓인지 영재는 공부라는 것에 많은 부담이 없었던 탓에 사실 학교 성적은 좋을 수 밖에 없었다. 좀 이해가 안되는 어불성설 같은 얘기일지 모르나 이렇게 이해하면 쉽다.

 

영재와 튼의 부모님인 유교수 부부는 명문대를 많이 간다는 학교들이 모여있는 학군에 대한 개념이 거의 전무했다. 영재가 어렸을 때는 인천에 살면서 바다가 보이는 경치가 좋다고 생각되어 월미도에 가정을 꾸렸으며 영재가 고등학교에 갈 무렵 직장을 옮겨 간 곳은 대전 유성구였는데 나름 주위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들이 밀집한 곳이 아닌 충남 연기군의 한적한 전원 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이런 가정 환경 탓에 영재와 튼 모두 경쟁적으로 교육에 열을 올리던 부모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학교를 다닌 탓에 왠만큼 학교 생활에만 충실해도 성적은 잘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특히 중학교 시절의 영재는 인천 지역에서 꽤나 날리던 수재로 소문이 났었다. 그런데 그 진상은 사실 알고보면 영재의 특출난 수학에 대한 이해도 덕분이었고 전국 수학 경시대회에서 한번 입상을 한 까닭에 학교측이 유별나게 홍보를 해버린 까닭이지 영재 스스로 느끼는 수재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사실 전국 규모의 수학 경시대회라면 참가하기전 이런 저런 준비를 많이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교측이나 부모님들의 무관심이 합하여 아무런 준비없이 지역 예선을 통과 전국 대회에 나간 것이라서 많은 준비를 거쳐온 학생들에 비하여 턱없이 부족했던 정보 탓에 겨우 3위라는 성적을 거둔 것이었다.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로망이 있던 물리학에 대한 관심 탓에 영재는 그당시 몇 안되던 과학고를 진학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고, 과학고를 진학하게 되었다. 아버지인 유교수가 대전 카이스트 화학과로 옮겨가게 되어서 영재도 대전 과학고를 응시했었고 무난히 합격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과학고 친구들은 영재 입장에서도 보면 오히려 딴 나라 사람들 같았는데, 그 이유는 이 친구들은 진로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이 없어 보여서였다. 영재라고 특별히 진로 고민을 많이 해 본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선배들이 그랬듯이 자연스럽게 과기대 진학이란게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게 되어버린 대전과학고의 분위기가 영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에 된 영재는 이러한 고민에 친구들과의 사이도 소원해지고 학교 성적도 따라서 추락하게 되고 이것 저것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어느 날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집에 돌아간 주말에 영재는 유교수와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사실 유교수는 힘들어하던 큰 아들의 모습을 이미 알고 있었던 터라 영재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벌써 알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였다.

 

. 그럼. 뭐든 얘기를 해봐라. 그런데 니가 얘기하기전 내가 먼저 할 얘기가 있다.”

 

어렸을 적 부터 다른 친구들의 아버지같지 않은 독특한 사고를 가진 아버지를 보아온 탓에 영재는 이번에는 어떤 충격적인 말을 할지 갑자기 자신의 고민은 잊어버리고 아버지가 어떤 말씀을 하실지 궁금해졌다.

 

영재야, , 이건 내 입장에서도 조금 하기 힘든 얘긴데…”

 

, 학교를 관두는 게 좋겠다.”

 

이 얘기에 영재는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아버지의 건강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일까? 아니면 부임해 온지 얼마 안된 새로운 학교에 적응을 못하셔서 벌써 또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하시는 건가? 다시 미국으로 가신다는 것일까?’

 

, 무슨 말씀인지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해주실 수 없나요?”

 

영재는 온갖 추측을 뒤로 하고 용기를 내어 아버지에게 물었다.

 

네가 힘들어하는 걸 몇 달 간 지켜봐왔다. 내가 보기에는 넌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다. 공부라는게 본인이 하고 싶은 꿈을 쫓고 그 꿈에 맞는 공부를 해야 성과가 있는 법인데, 너한테 그런게 보이는 않는 구나. 네가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가 아마도 내가 보기에는 너의 꿈을 보여주기에 부족해 보인다. 학교를 그만 두고 여기 근처에 있는 일반고로 가서 조금은 쉬어가며 무엇을 하고 싶은지 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게 어떻겠니?”

 

이런 뜻하지 않은 반응에 영재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 지 고민이 조금 되었다.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말이 아니라 진로에 대한 고민을 상담하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이미 아버지는 더 멀리 보고 계셨다는 사실에 갑자기 울먹거렸다.

 

아버지,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갑자기 학교를 지금 옮긴다는 게 저한테도 부담인 거 같으니, 아버지만 허락하신다면 지금 있는 곳에서라도 조금 쉬엄쉬엄 하고 싶어요.”

 

그래, 그것도 좋은 생각인 것 같다. 그렇게 해라.”

 

그 다음 주 기숙사에 복귀한 영재는 주말에 아버지와 나눴던 대화가 계속 머리에서 둥둥 떠 다녔다. 이 대화는 고교 시절 뿐 아니라 평생 영재의 머리 속에서 오래 간직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아이에게도 반드시 멀리 볼 수 있는 그런 시각을 길러주어야겠다.’ 영재의 아버지는 현재보다는 미래를 더 중요시하던 사람이었고,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면 현재의 잠시 동안 머뭇거림이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을 정확히 알던 사람이었다.

 

며칠간의 고민 끝에 영재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기대 진학 (과기대란 이름은 나중에 카이스트란 이름으로 완전히 바뀌게 된다) 에 치우져 있던 환경에서 어렸을 때 감명 깊게 읽었던 슈바이쳐 박사의 전기에서 영감을 얻어 남에게 도움이 되는 진로로 가보자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과기대, 슈바이쳐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아무런 관련이 없어보이는 곳에서 그 연관성을 찾는 버릇은 그 아버지 유교수와 어느덧 비슷한 수준으로 성장해 버린 영재의 사고구조를 엿볼 수 있는 단편이다.

 

특수학교에 대해서 가산점이 없었기에 내신 성적이 중요한 의대 진학을 결정하게 된 영재는 다른 친구들이 다들 2학년을 마치고 과기대를 진학하고 난 뒤 1년 더 공부를 하여 연세대학교 의예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왜 서울대 의예과를 지원하지 않았냐는 친척들의 질문에 자신은 한국 사립대학의 무한한 발전가능성에 더 끌렸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연세대 진학을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이유가 아니였다. 그 당시 매 주 성당을 꾸준히 다녔던 영재는 자기가 다니던 성당에서 맘 속에 품었던 자기보다 두 살 많던 누나가 연세대학교에 진학한 탓에 고백한 번 못해 본 자신을 한탄하며 그 누나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어서 같은 학교를 지하게 된 것이었다.

 

어린 나이라도 인생에서 한낱 학교 간판보다는 사람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아니 이런 것도 이 젊은 나이의 영재에게는 사치스러운 의미 부여일 것이다. 어찌됐던 서울 신촌, 연세대 의예과 1학년이 된 영재는 평생 서울에 살아본 적이 없었던 탓인지 그 생활이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렇게 맘 속에서 흠모하던 성당 누나를 1994 3월 캠퍼스에서 우연히 (우연은 당연히 아니다. 찾고 찾아 그 누나가 듣는 교양 과목을 알아내서 같은 과목을 등록했던 것이다) 만났고, 그 만남에서 벌써 자기보단 훨씬 성숙해버린 그녀의 모습에서 이질감을 느꼈고, 용기내서 고백을 했는데도 자기를 무시해버린 그녀에게서 이미 격리된 자신에 모습이 싫어진 것이었다.

 

이런 방황은 어렸을 적 자신이 아버지를 찾아 어리광을 부리며 말할 고민 상담이 더 이상은 필요가 없었다. 금세 어른의 것으로 커버린 영재의 의식은 의학이라는 것이 정말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는 걸 금방 깨달았고, 풋사랑에 연연해버린 자신의 모습에도 실망스러워서 새로운 결심을 2년 전 보다는 더 빠르게 할 수 있었다. 영재의 결심은 자기는 정말 물리학을 하고 싶었다는 거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의예과를 빨리 관두는 게 맞다는 사실이었다.

 

자기에게 많은 기회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인지 새로 갈 학교 선정은 오히려 쉬웠다. 카이스트. 일반적인 수능, 내신만 보는 다른 학교보다 자신이 더 잘 알던 학교라 비교적 쉽게 진학 준비에 열을 올려 1995년에 다른 친구들은 벌써 대학교 3학년이던 그 때 영재는 카이스트 1학년으로 다시 입학하게 되었다. 물리학을 전공하고 싶었던 영재는 일찍 물리학 관련 수업에 맞는 기초과목들을 수강하게 되었고, 어느덧 유성캠퍼스의 그 곳에서 한껏 기지개를 편 표정으로 즐거운 표정을 많이 짓는 학생이 되었다.

 

아마 이때부터 영재에게는 물리학, 그리고 정말 학문의 최정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여기 저기를 때려치우던 자신의 과거가 약간 부끄럽기는 해도 그러한 자유로웠던 자기가 항상 사고의 자유를 가졌다고 생각해서 이제는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도 되었다.

 

물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고 전공과목을 열심히 듣던 중, 영재는 노벨상에 대해서 궁금즘이 많이 들었다. 남들이 다하던 그런 쓸데 없는 고민이었던 , 한국에서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을까?’ 였지만 영재는 더 심도있게 그 문제를 연구해보기로 했다. 많은 사례를 보면서 영재 눈에 뜨인 사실은 거의 대부분의 노벨상 수상들이 흔히 말하던 명문대 출신이었다는 사실 (이건 새로운 발견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지만), 그리고 미국, 영국, 독일 출신들이 눈에 띄게 많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학교가 뭐 문제될 거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영재는 그런 상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만약 미국이나 영국의 유명대학교 출신이라면, 나에게도 노벨상의 기회가 좀 더 생기는 것이 아닐까?’

 

그러던 영재에게 어느 날 아버지인 유교수가 흥미로운 이메일 하나를 포워드 해주었다. 원래 편입은 받지 않는다던 미국의 유명한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하나인 프린스턴 대학에서 그 해 시범적으로 3명까지 국제 편입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메일이었다. 평소 잦은 이메일이 오고 갔던 유교수의 예전 미국 동료가 유교수의 아들이 물리학 전공을 한다는 것을 알고선 친절하게도 알려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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