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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단편 (Novella)

프렌치 리비에라와 수학

by 노블리스트 2018. 6. 11.

연수는 분명 무언가에 홀린 듯 했다.

 

2008 8월의 어느 날 연수는 다니고 있던 직장 생활이 너무나 힘들었던 까닭에 자신만을 위한 짧은 여행을 떠나기로 갑자기 마음 먹었다. 32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그리고 직장에서는 벌써 7년차, 하지만 업무의 강도가 상당해서 그 7년이란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입사 시절의 기억이 아주 또렷했다.

 

흔히 얘기하는 남자들만 득실대는 이공계 트리를 밟았다고 해도 입사하기 전에는 활달한 성격으로 각종 동호회나 가끔 다니던 성당에서 이성적으로 친하게 지내던 여자들은 끊이지 않았던 연수였다. 하지만, 역시나 직장은 현실인지라 성과를 최고로 추구하는 업무환경 특성과 기업문화의 탓인지,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 달달한 연애는 꿈도 꾸지 못하던 그였다.

 

여행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부분은 혼자서도 충분히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고, 여유로움을 조금이라도 느껴볼 수 있는 장소, 그리고 무엇보다 당장 그 다음 주에 출발할 수 있는 일정을 잡는 일이었다. 최소한의 시간을 들여 최대의 효과를 볼려는 그 행동 역시, 성과만을 추구하는 직장 생활의 폐해라면 폐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 혼자 떠나는 여유로운 여행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검색을 했을 때 많은 사이트나 블로그 등지에서 가까운 홍콩, 일본, 싱가포르, 대만, 베트남이나 국내의 여러 곳을 추천하였지만, 그 중에서 연수는 뜻 밖의 장소인 프렌치 리비에라 ( French Riviera 또는 Côte d'Azur)’ 가 눈에 확 들어왔다. 어렸을 때부터 소설을 많이 본 그는 이 장소가 예전 유럽 사람들에게 아주 유명한 휴양지 라는 것을 알 고 있었는데, 그러한 지식은 그의 상상력을 부추겼고 쉽게 마음을 결정할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업무를 처리하듯이 빠른 속도로 당장 다음 주에 출발할 수 있는 항공편을 구입하였고, 니스 (Nice)를 중심으로 1주일간의 계획을 무계획으로 하는 일정을 잡아버렸다. , 1주일간 뭘 할지는 니스의 바닷가 바로 옆 5성급 호텔에 짐을 푼 뒤 결정하겠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과장님, 저 다음 주 금요일부터 1주일간 휴가를 떠나려고 하는데 허락해 주세요. 지난 7년간 제대로 된 휴가 한번 못 갔고요, 지금 제가 1주일 정도는 시간을 비워도 업무에 별 지장이 없도록 철저히 잘 준비해놓고 휴가를 떠나겠습니다.”

 

연수의 상사인 조과장은 연수의 그런 맘을 금방 알아들었는지 별 생각이 없는 듯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다.

 

“7년간의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마음껏 놀다가 오게.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건가?”

 

프랑스로 가려고 합니다. 벌써 항공편 예약도 마쳤구요.”

 

, 프랑스. 좋지. 나도 자네 나이 쯤에 회사업무 때문에 니스라는 곳을 간 적 이 있었는데 거기는 햇볕이 참 좋아서 너무나 아름다웠던 기억이 나는군.”

 

, 조과장님도 니스를 가셨군요. 저도 우선 니스로 갈 계획입니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너무나 쉽게 풀려버린 휴가 계획을 가지고 연수는 인천발 파리행 에어프랑스편에 몸을 맡겼다. 파리를 거쳐서 니스 공항에 캐리어 하나를 가지고 혼자서 우두커니 서있던 그는 자기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이제야 현실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프랑스어는 생각보다 영어와 많이 달라서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줄 알던 연수는 공항에서부터 갑갑한 상황을 맛봐야 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싶었고 표지판들이 영어도 섞여 있지만 프랑스어의 어떻게 보면 희안한 발음 법칙 때문에 한글로만 익혀온 지명들이랑 표기법이 도무지 매치 (match)가 안 되는 것이었다.

 

대개 이러한 상황에서 티비 프로그램에서 보면 갑자기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웬걸, 그런 일은 연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극적효과, 뭐 이런게 없는게 혼자하는 즉흥 여행의 재미라 생각하고 연수는 공항안의 인포메이션 데스크 먼저 찾았다. 영어로 이렇게 저렇게 물어보니, 예약한 호텔인 네그레스코 (Le Negresco) 호텔로 가는 방법을 알아내 공항에서 곧장 연결되는 버스를 타고 호텔에 다다르게 되었다.

 

오래되었지만 최고급 호텔의 위용을 뽐내는 네그레스코 호텔은 니스의 유명한 자갈로 뒤덮인 비치와 가까워서 여유로움을 원하던 연수는 비치라도 걸으면서 휴양을 해보리라 마음 먹었다. 가격이 좀 비쌌지만 상당히 마음에 들어서 금방 돈 생각이 안 날 정도가 되었다는 사실에 나름 흐뭇하였다.


Lightrail Tram in Nice France 2008

 



Trinity College University of Cambridge Cambridge England 2017

 


정연은 케임브리지 시내의 작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대학가인 케임브리지는 그 유명한 케임브리지 대학 (Cambridge University)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 동네를 구성하는 많은 상점과 식당들, 수많은 학생들 때문에 쉴 틈이 없는 곳이다. 다른 동료들과 어울려서 식사를 하는 것은 어느샌가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는지 정연은 혼자서 식사를 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수학, 숫자와 공식, 도형, 논리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인간의 지적인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도구로서 부족함이 없는 중요한 아이템이다. 정연은 어렸을 적부터 학자의 집안에 태어나 나름 엘리트 교육을 받아 자신도 모르고 학문적 허영심에 물들었었고, 본인의 지능의 우수함을 일찍 깨달아서 수학이라는 학문에 빠져들게 되었다. 대학에 가서도 수학을 전공했지만 뭔가 국내의 환경이 여성으로 학자로 성공하기에는 결혼의 압박이나 유흥가가 즐비한 곳에 대학을 다닌 탓도 있지만 서울이라는 곳이 간접적으로 의미하는 수많은 유혹을 떨쳐내기 위해 유학을 결심한 뒤, 1년간의 준비를 해서 어렵게 도착한 곳이 이 곳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이었다.

 

물리학자로 유명하지만 수학자로도의 명성이 높은 아이작 뉴튼 (Isaac Newton), 스티븐 호킹 (Stephen Hawking)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옥스포드 대학교 (Oxford University)로 옮겨갔지만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수학자 중의 하나인 앤드류 와일즈 (Andrew Wiles) 역시 케임브리지 수학과 출신이다. 이러한 유명인들이 거쳐간 곳인지라 정연은 오랜 기간 준비와 인터뷰 등을 통해 결국 얻게 된 합격 통지서를 받아 들었을 때 잠깐이지만 눈물을 찔끔하기도 했었다.

 

이제 케임브리지에서 대학원생으로 정착한지도 일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문턱이 높은 박사 학위 논문을 위한 연구 주제를 찾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다. 아마 정착할 때 느꼈던 힘든 시절, 그리고 평생 느껴보지 못한 낯선 곳에서의 혼자라는 외로움 등이 가장 큰 이유일거라고 생각했다. 일년이 다 되어 가는 데도 마음을 터놓고 사귈만한 친구 없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보내던 정연은 그래도 성인인지라 학자로서 이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였을 때 가장 좋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었는지, 어느 순간에 가장 힘들어했는지 등을 하나하나 머리 속에 떠올려보는 논리적 접근을 통해 정연은 어떻게 보면 가장 쉬운 답을 얻어내게 되었다.

 

, 항상 뭔가 새로운 것을 하기 전에는 충분히 놀고, 충분히 쉬는 시간이 필요했었어.’

 

비상한 두뇌를 가진 정연은 사실 공부벌레와는 거리가 멀었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흔히 얘기하는 놀면서 공부해도 성적이 잘 나오는 타입이었는데, 케임브리지라는 큰 이름에 위축되어서 지난 일년 간은 학문을 해야지만 한다는 강박 때문에 계속 공부에만 힘들게 에너지를 쏟아왔던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정연의 다음 단계는 아주 간단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 손을 벌리지 않고, 경비가 적게 드는 멀지 않은 곳으로 혼자서 휴가를 가기로 했다. 유럽이라고 하면 영국 그리고 생각나는 나라는 프랑스 아니었던가. 정연은 프랑스로 가기로 했다. 프랑스에서도 예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남부 해안에 가면 아는 사람은 없어도 왠지 충분히 재충전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8월의 어느 날, 정연은 케임브리지에서 기차를 타고 런던 킹스 크로스 (King’s Cross) 역을 거쳐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 (St Pancras) 역을 거쳐 파리의 북 역 (Gare du Nord)과 파리 리용 역 (Gare de Lyon)을 거쳐 니스에 도착했다. 니스에 이른 저녁 무렵에 도착한 정연은 예약해 두었던 니스 구 시가지 (Vieille Ville)의 조그마한 아파트에  일주일간 머물게 되었다.


Thalys train at Gare du Nord Paris France 2018



 

앙티브 (Antibes)는 프랑스 남부 해안의 도시 중에서도 해안가의 여유로운 경치를 감상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동네가 크지 않아 다른 유명 관광지와는 다르게 여행객들이 아주 넘쳐나는 그런 곳은 아니다. 앙티브 기차역 주위에는 조금은 번화하다고 할만큼 가게들이 있어 조그만 도시의 기분을 느낄만하다. 전 날의 과음, 아니, 과행보 (너무 많이 걸었다) 탓인지 졸림이 쏟아지는 바람에 연수는 앙티브 역 주위에 있던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카페인의 효과는 빠르게 작용하여 30분 정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연수는 조그만 백팩을 챙겨 들고 앙티브에 오면 다들 가본다는 피카소 미술관 (Musée Picasso)으로 향했다. 피카소라는 화가가 너무 유명하다지만 피카소를 주제로 하는 미술관은 한번도 가본적이 없었던 연수는 앙티브의 피카소 미술관에 적잖이 실망을 하였다. 피카소의 유명한 그림은 거의 없다시피 한 이 곳이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그로서는 그저 그랬던 것이다.


Picasso Museum Antibes France 2008


 

실망을 안고 미술관을 나선 연수는 자신의 여행 주제에 맞게 별 생각 없이 근처 동네를 걸어보기로 했다. 어느 골목길에서는 크게 펼쳐있던 프로방살 재래시장 (Marche Provencal)의 아기자기함에 감탄하기도 하고, 출출한 허기를 달래는 베이커리 역시 미술관 보다는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Marché Provencal Antibes France 2008

니스의 숙소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시간이 많이 남아, 그래도 앙티브로 오기 전에 잠시 읽던 여행 안내 책자와 블로그 등에서 봤던 앙티브의 비치에 앉아 한적한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을 먹고 해변가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바다가 보이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니스의 자갈해변과는 다른 하얀 모래의 백사장 위에서 비치타월을 깔고 앉아 있는 모습에 기분이 들떴다.




백사장 위에서 백팩에 혹시라도 필요할 까봐 고이 모셔왔던 비치타월을 꺼내 들고 선스크린도 꼼꼼히 바르고 오후 4시의 한적함을 만끽하는 연수는 이러한 시간들이 정녕 휴가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 한바가지를 쏟았다가 금세 안정을 되찮고 햇볕 그리고 해변을 즐기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 등을 여유롭게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정연은 헐레벌떡 니스에서 칸 (Cannes)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그 전날 니스에 도착하여 혼자서 낯선 곳의 밤을 쉽게 적응 못해 밤 잠을 설치다가 다음 날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기차타면 금방인 칸에 가기로 하고 잠에 들었는데, 기차 시간에 맞춰 울리기로 한 알람을 듣지 못해 늦잠을 자서 옷도 대충 챙겨 입고 나와 겨우 늦지 않게 칸으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칸 하면 영화제가 유명하니깐 분명 볼 것이 많으리라 생각했다.

 

칸에 11시 쯤에 도착해서 기차 역에서 내려보니 이게 도대체 뭐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화제를 할 때는 정말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이 조그만 도시는 정말 뭘 보고 즐겨야 할 지 모르는 동네같았다. 오기 전에 사전 조사를 제대로 못한 불찰은 자신 탓이니깐 논리적인 사고를 해보기로 했다. 이 재미없는 곳에서 시간을 더 보내느니 기차를 타고 오면서 본 앙티브에 들렀다가 다시 니스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정하면 빨리 행동에 옮겨야 하는 법. 정연은  바로 기차 역으로 돌아가서 앙티브로 향했다. 평소에 미술과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정연은 앙티브에 피카소 미술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앙티브에서 피카소와 모네 등 유명한 예술가들이 거주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학과 미술은 어떻게 패턴을 풀어내느냐에 따라 아름다워질 수 있는 공통점이 있어서이기 때문이라고 본인은 생각하는 듯하다.

 

앙티브의 피카소 미술관에서 정연은 상당히 흡족해했다. 유명한 피카소의 그림은 없었지만 피카소의 습작 등 미술가의 생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피카소 미술관을 기분 좋게 나선 정연은 앙티브에서 가장 부유한 저택들이 있다는 캡 (Cap d’Antibes) 쪽으로 가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우연히도 시내 버스가 지나가는 걸 보고 버스에 올라타서 캡 방향으로 가다보니 왼쪽으로 넓은 백사장이 눈에 들어왔다. 정연은 빠른 판단으로 주택가의 집을 멀리 바닷가에서 보는 것은 훨씬 더 운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 버스에서 하차, 백사장으로 나서 언덕 위의 집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연은 자신의 비상한 머리가 여행에서도 빠른 판단과 상당히 흡족한 결과물들을 쏟아내는걸 보고 갑자기 희열을 느꼈는지 주위의 많은 사람이 있다는걸 잠시 망각하고 !” 소리를 질렀다.

 

연수는 따뜻한 햇볕에 나른함을 느끼면서 스르륵 잠에 들려는 찰나 소드라치게 놀랐다. 갑자기 옆에서 서 있던 어떤 동양여자가 소리를 질러서였다. 근데 , 이 소리는 분명 한국사람이 내는 소리일텐데하면서 소리를 내는 쪽으로 눈길을 돌려보니 길지 않은 머리는 단단히 묶고 선글라스를 썼지만 한 눈에 봐도 한국사람임을 알 수 있는 자기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뭔가 사연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서 모래를 털고 일어나, 그 사람 쪽으로 다가갔다.

 

죄송한데요. 한국분이시죠?”

 

연수의 이러한 질문은 이런 곳에서는 생각도 못한 정연은 자기가 지금 들은 말이 한국어인지 영어인지 아니면 프랑스어인지도 파악을 못한 채 무의식에 가까운 반사작용으로,

 

“Pardon?”

 

! 한국분이시구나.”

 

금방 지금 자기 앞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남자가 한국인임을 깨달은 정연은 금방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왠지 사회에 찌들어 산 샐러리맨의 모습도 느껴졌지만 프랑스 남부지방의 뜨거운 햇볕에 조금은 그을린 아주 편안한 차림의 인상이 선한 젊은 남자여서일것이다.

 

. 그런데 누구시죠?”

 

. 전 그냥 한국에서 여행온 사람인데요. 여기서 한국 사람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거라곤 생각을 못해서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해요.”

 

아뇨. 전혀 그렇진 않은데.”

 

전혀 다른 곳에서 온 연수와 정연은 별 달리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럼, 하시던 거 계속하세요. 전 이만.”

 

숫기가 없는 연수는 사실 지금 처음 본 정연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아주 궁금했지만 평소에 하던 대로 쉽게 포기하고 다시 비치타월에 몸을 맡기려고 했다.

 

혼자서 오셨나 봐요. 저도 그런데. 실례가 안된다면 저도 그 비치타월에 조금 앉으면 안될까요? 여기까지 오느라 사실 좀 힘들어서 다리가 좀 아프네요.”

 

미술관에서 버스를 타고 온 정연은 들통나지 않을 거짓말을 했다. 이 선한 인상을 가진 한국남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아주 궁금해서 그런 거짓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럼요. 충분히 넓으니깐 이 쪽으로 앉으세요.”

 

연수는 지금 이 시간이 정말 믿겨지기가 않았다. 누군지 모르지만 귀여운 인상을 가진 왠지 총기가 뚝뚝 묻어나는 인상을 가진 이 한국여자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주 기분이 들떴던 것이다.

 

이 둘은 앙티브의 백사장에 앉아서 여러 이야기를 자연스레 이어갔다. 둘 다 앙티브에 숙소가 있는 것을 파악하고 난 뒤 같은 시간에 기차역으로 가면 된다는 것을 알고 더 여유가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왜 여기에 자기가 있는지 이런 저런 얘기를 술술 뱉어내느라 어느새 석양이 지는 모습을 서로 나란히 앉아서 보고 있었다. 캡 쪽으로 해는 서서히 지고 있었고 조금 지나면 어두움이 몰려올 것이라 생각해서 백사장에서 일어나 서로가 있는 니스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정연과 연수는 니스에 돌아와서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서로에게 작별을 고하고 헤어졌는데, 그 다음날 우연히도 정연의 숙소 근처의 구 시가지를 여행하면서 다시 보게 되어 다시 인사를 하고 다시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되고 그리고 정말 가까워졌다. 그 후 3일간 그 둘은 프렌치 리비에라의 여러 곳을 서로 꼭 붙어서 같이 돌아다녔다.  

 

서로의 일정을 보니 연수의 인천행 비행기가 정연의 케임브리지행 기차보다 하루 먼저 가는 관계로 정연은 연수를 공항까지 바래다 주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다. 세상의 모든 만남은 우연에서 시작된다지만 그 우연이 정말 운명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의 이별이 끝일거라고만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마음 속에는 뭔가 아쉬움이 잔뜩 있었다. 그 아쉬움은 여기서 만나게 된 친구인 연수라는 사람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다는 것. 끝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러한 관계가 조금은 더 이어졌으면 하는 그러한 아쉬움이었다.


Toward The Cap (Cap d'Antibes) Antibes France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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