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에서 북쪽으로 닿아있는 다른 주인 오레곤 주를 이제껏 한번도 밟아보지 못해서 매년 말이면 꼭 가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어쩌다 거의 충동적으로 주말시간을 내어서 떠났다. 뭐 다른 곳을 들러서 여기저기 보는 것도 좋겠지만 딱 한 도시, 포틀랜드 (Portland)를 행선지로 하면 계획이 오히려 간단할 것 같아 계획을 짜보니 우선 비행기를 타고 가기에는 비용이 그다지 싼 것도 아니고 어차피 공항에서 내리면 차를 또 빌려야 하니까 드라이브를 통해서 가는 게 제일 낫겠다 싶었다. 이래 저래 왕복 1,300마일을 드라이브를 해야 하는 길이라서 하룻밤이나 이틀밤을 중간에 자더라도 운전하고 잠자고 하는 시간이 대부분일 것 같은 일정이어서 상당히 많이 망설였던 것 같다. 최대한 숙박을 줄여보는 일정을 구상하다가 아예 아주 이른 새벽에 출발하면 어떨까 싶었다. 아주 새벽에 출발하면 포틀랜드에 낮 시간에 도착할 수가 있고, 조금 둘러보다가 다시 운전해서 내려오면서 중간 위치에서 하룻밤을 자고 또 열심히 차를 굴려보면 될 것 같았다.
우선 제일 중요한 것이 뭘하러 가느냐이다. 포틀랜드가 아주 자유로운 분위기의 도시로 유명하고 동네가 아기자기하게 힙하다는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지만 특별히 관광지로서 볼만한 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나이키의 도시이지만 나이키 관련 관광상품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러면 스페셜티 커피를 제공하는 카페가 많아서 카페투어나 근처의 와이너리투어 같은 게 있는데 와이너리투어를 나파/소노마밸리 근처에 사는 내가 갈 일은 없으니 카페투어가 제일 흥미가 있었다. 사실 카페투어라는 것도 스페셜티커피의 중흥을 이끌고 있는 건 포틀랜드 뿐 아니라 샌프란시스코도 마찬가지로 (아니면 더) 유명하기에 그저 그럴 것 같았지만 그래도 가보자 싶었다. 그래서 어떤 커피숍/카페를 가는게 좋을까 열심히 찾아보고 계획을 세워봤다.
계획은 우선 이랬다. 새벽 4시에 출발, 오후 2시에 포틀랜드 도착, 카페투어를 퍼프 (Puff), 스텀프타운 (Stumptown), 키퍼 (Keeper), 노사파밀리아 (Nossa Familia) 순으로 한 뒤, 뭐 다른 것을 할지 고민 좀 하다가, 이른 저녁 7시 정도에서 포틀랜드를 떠나서, 밤 10시까지 내려 올 수 있는 I-5 고속도로 근처의 작은 타운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오전 8시에 출발해서 집에 오후 4시 정도에 도착하는 계획이었다. 사실 여러 카페를 찾아본 건 포틀랜드에서 최근 생긴 스페셜티커피숍 중에선 스텀프타운이 전국구급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제일 유명하지만 찾아보니 거기말고도 정말로 가볼만한 곳이 많다는 말에 여기저기를 찾아본 것이었다.
우선 계획은 이랬지만 실제로는 이랬다.
우선 새벽 4시에 출발하는 건 성공했다. 출발하고 얼마 안되서 주유를 해야 되어서 주유를 비싸게 했다. (이 동네 기름값이 무척 비싸다.)
일기예보를 열심히 봤지만 비가 올지 안 올지 애매하길래 그냥 무작정 떠났는데, 공교롭게도 오는길 가는길 비가 상당히 많이 왔다. 그리고 I-5가 통과하는 캘리포니아의 북부와 오레곤 남부는 산세가 험한 지역이라 고산지대로 접어드니 눈발이 휘날릴 정도였다.
가는 길에 이렇게 화창한 구간도 있었고 정말로 이런 날씨를 원했는데 포틀랜드에 도착해서도 비가 오락가락하길래 비를 좀 맞는가 싶었지만 다행히도 비를 맞을 정도의 악천후는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장 처음 도착한 곳은 퍼프커피 (Puff Coffee). 토요일 오후 시간인데 꽤나 한가했다. 재미있겠도 여기도 나름 관광지라서 나 말고도 커피를 사가지고 가는 사람들이 다들 사진을 몇 장씩 찍어대더라. 나야 카페투어만이 목적이었으니 게다가 쓰레기생산은 기피하는 편이라 메뉴에서 마키아토를 시킨 뒤 일회용컵이 아닌 조그만 머그잔에 담긴 마키아토를 홀짝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예정대로 오후 2시 전에 포틀랜드에 도착을 해서 시간이 꽤나 여유가 있다는걸 깨닿게 되었다. 도저히 저녁까지 뭘해야 할지를 모르겠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차피 계속 앉아있는 건데 그냥 중간에 숙박을 하지 않고 집으로 가면 어떨까 싶어서 우선 예약했던 모텔을 취소해버렸다. 가다가 힘들면 그냥 아무대나 들어가서 잠만 자면 된다는 식이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쳐 갔는데 마키아토를 시키면 이렇게 탄산수 한잔을 주는데 찾아보니 커피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커피를 마시기 전 입을 헹구는 용이라고 한다. 수시를 먹을 때 나오는 생강과 비슷한 용도인 것이다. 어쨌거나 가는 길에 예약을 한 모텔을 취소했기 때문에 다시 일정을 조정했다. 포틀랜드에서 새벽 4시가 아닌 오후 4시에 떠나면 마찬가지로 다음날인 일요일 새벽 2시 전에 도착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우선 커피집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퍼프 다음은 원래 계획의 거의 유일한 목적지였던 스텀프타운 (Stumptown Coffee Roaster). 스텀프타운은 포틀랜드에도 이미 전국구가 되었고 포틀랜드에만 5개의 카페가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투어니까 오리지널 스토어로 향했다. 그리고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마키아토를 시켰고, 퍼프에서는 고민을 하다가 사진 않았던 기념품도 하나 구입했다. 퍼프에서는 기념품을 구입하지 않았던 이유는 당연히 상품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는데 스텀프타운에 오니 한가지 사실을 의심하게 되었기에 그냥 머그 하나를 집어들었다. 의심한 것은 머그와 텀블러가 같은 회사의 같은 모델을 커피숍의 로고와 장식만 바뀐 채 똑같이 판다는 거였는데 스텀프타운이 두 번째여서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어가는 시점이어서이다. 여기는 그래도 좀 더 알려진 관광지 카페여서 사람이 조금 있는 편이었지만 커피를 오더하는데 줄을 서지 않아도 될 정도로 한가했다. 가장 좋은 자리라고 여겨지는 창가자리도 아무도 없어서 그냥 앉았다. 시애틀의 스타벅스 1호점 (사실은 2호점)에서는 정말 줄이 길고 하물며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유명 커피숍에서도 줄을 길게 설 때가 꽤 있는데 포틀랜드는 그 정도는 아니어서 오히려 좋은 점이 있었다.
마키아토를 두잔 연거푸 들이키고 나니 카페인을 평소에 많이 섭취하지 않는 나는 심장이 좀 빨리 뛸 정도여서 벌써부터 카페인이 들어간 커피는 피해보자 싶었다. 그래도 커피/카페투어인데 아직 갈 길이 먼데 어떡하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고민은 쉽게 해결이 되었다. 다음에 간 카페는 키퍼 (Keeper Coffee Co.)였다. 그런데 여기는 왠 일인지 (방문한 모든 카페 중에서 가장 줄이 길었다) 줄도 엄청 길었고 앉아서 커피를 마실 자리도 없었다. 그래서 분위기만 감상을 하고 그냥 패스하기로 했다.
하나를 패스를 했으니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어 부리나케 또 다른 카페를 투어일정에 추가를 했다 .그래서 간 곳은 코아바 (Coava Coffee Roaster). 코아바 카페 역시 굉장히 한산했고 여기에 오고선 스텀프타운에서 어느 정도 확신했던 의심이 이제는 거의 확신의 단계에 이르렀다. 다 똑같은 상품만 판다. 그래도 여기는 관광으로도 오는 카페답게 머그나 텀블러 말고도 모자, 티셔츠 같은 것도 많이 팔긴 했다. 여기서는 카페인 부담으로 코르타도 (cortado)를 주문하면서 "혹시 디캪"이 되냐고 물어보니 당연히 된단다.
카페인은 지금 당장 필요한게 아니라 정말로 오늘 밤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면 꽤나 긴 드라이브를 해야하기에 그리고 도착해서는 잠을 잘 자야하기 때문에 내 몸의 카페인의 영향이 지속되는 시간과 그런 것들을 고려해보니 커피를 지금 사서 가지고 온 "블루바틀 (Blue Bottle)" 텀블러에 잘 보관해서 포틀랜드를 떠나면서 차 안에서 즐기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포틀랜드 카페투어의 마지막 장소인 노사파밀리아 (Nossa Familia Coffee)에서는 커피를 샀다. 카페인이 어느 정도 필요해서 커피로는 이제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드립커피를 블루바틀 텀블러에 담아달라고 했다.
텀블러에 드립 커피를 받아들고 여기서도 기념품을 둘러보니 정말로 이제까지 다닌 5군데 카페 모두 같은 종류의 머그와 텀블러를 팔고 있었다. 의심이 거의 완전히 확신이 순간이기도 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살 물건이 못된다 이런건 아니고 벌써 이런 종류의 물건들이 집에 꽤 많으니 쓰지 않을 물건은 사지 않는 습관 탓에 기념품이라고 해도 막 살 수는 없었다. 카페투어는 다 마쳤는데 수정된 계획에 따르면 아직 시간이 20-30분 정도가 더 있었다. 그래서 뭘 할지 고민하다가 평소에 좋아하는 대학투어가 가능하지도 않을까 싶었다. 오레곤주 전체를 다 생각하더라도 유명한 대학 또는 방문해 보고 싶은 대학은 대략, 오레곤 대학교 (University of Oregon), 오레곤 주립대학교 (Oregon State University), 오레곤의학과학대학 (Oregon Health & Science University), 그리고 리드대학 (Reed College)로 추려볼 수가 있다. 오레곤 대학과 오레곤 주립대학교는 오는길 가는 길에 있는 동네들인 유진 (Eugene)과 코발리스 (Corvallis)에 있는 곳인데 특별히 내가 흥미가 있는 곳은 아니라서 시간을 따로 내어보긴 싫었으니 남은 대학 둘 중 스티브잡스 (Steve Jobs)가 다니다가 중퇴한 대학인 리드칼리지가 가장 흥미가 있어서 위치가 어딘지 찾아보니 다행히도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두번 생각하지 않고 리드칼리지로 향했다.
리드칼리지는 많은 리버럴알츠칼리지 (Liberal Arts College) 중에서도 상당히 리버럴하다고 알려진 학교이다. 상당히 좋은 대학이기도 하고 해서 어떻게 생겼나 구경을 갔다. 캠퍼스의 모습이 작은 사립대학답게 아기자기하게 이뻤고 벌써 벚꽃이 흩날릴 시기라서 화창하게 핀 벚꽃나무가 너무나 예뻤다.
수정된 계획대로 캠퍼스 구경을 마치고 나니 마침 시간이 딱 4시가 되어서 열심히 드라이브를 해서 집에 도착하니 새벽 2시가 거의 다 되었다. 그리고 예정대로 어느 정도 카페인의 각성효과가 떨어져 갈 무렵이어서 잠드는 데도 그다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차 안에서 정말로 오랜 시간을 보내서 집에 오고 나선 한참 동안 지상에서 좀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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