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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문화 Culture

2025 중국 산둥성 린이 왕희지 구거주지 (Former Residence of Wang Xizhi Linyi China)

by 노블리스트 2025. 9. 17.

린이가 관광지로 유명하지 않다보니 한국어 번역을 편의상 "생가"라고 많이 한 것 같은데, 생가는 birthplace, 즉 태어난 곳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곳은 왕희지가 거주한 곳인거는 맞지만 생가는 아닌 걸로 알고 있다. 왕희지가 이 곳 린이에서 출생한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그런데 왕희지 (Wang Xizhi)가 누구냐 - 나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했지만 누구인지 잘 모른다. 읽어보고 들어보니 한자 서예 (calligraphy)의 근본을 확립한 인물이라고 한다. 가장 아름다운 글씨를 쓰는 걸로 유명해서 현대까지 거의 모든 한자 글씨의 기본이 된다고 한다.

 

그만큼 유명하고 그 당시 세력이 왕성했던 왕씨가문, 즉 금수저 가문 출신이고 삼국시대 이후인 진나라 시대에 활동했던 정치가였지만 서예가로 완전히 돌아선 뒤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냥 "명필"이 아닌 서성 (서예의 성인, Sage of Calligraphy)란 별명이 있을 정도다.

 

린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라고 보면 된다. 집이 꽤 크다. 입장료도 20위안을 받고 있다.

 

큰 대문을 들어서면 많은 서예 작품, 조각, 연못, 정자, 절, 사당 이런 것들이 줄줄이 있다. 규모가 꽤 있는 편이다. 너무 오래 전의 사람이라서 (1700년이 넘는다) 실제로 왕희지가 쓴 서예 작품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글꼴, 글씨체의 기준을 확립한 사람이라 계속 계승되어 와서 실제로 쓴 작품과 거의 흡사할 거라고 예상은 할 수 있다.

 

왕희지는 거위를 상당히 좋아했다고 한다. 동상에 이렇게 거위가 같이 있으면 왕희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워낙에 연습에 연습을 해서 살아 생전 정자에서 서예를 시전할 시에 연못이 묵색으로 물들어 흑색이었다고 전해진다고 한다. 벼루/묵 이런 것들의 형상이 곳곳에 있다.

 

전시관, 사당, 뭐 이런 건물들도 있다.

 

위용이 막강했던 낭야군의 왕씨 가문의 가계도를 보면 정말 많은 왕씨들이 이 곳에서 활약을 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사당에 모셔있는 3명은 당연히 중간에 있는 인물이 왕희지이고, 오른쪽에 있는 인물은 7남이자 막내아들이었던 왕헌지 (Wang Xianzhi)이다. 왕헌지 역시 서예가로 이름을 날려 왕희지와 같이 이왕 (두명의 왕)이라는 칭호도 있었다고 한다. 왼쪽의 인물은 찾아보니 지영 (Bian Cai?)라는 이름을 가진 스님이라고 짐작된다. 왕희지의 7대손인데 왕희지의 작품들을 물려받았다고 전해진다. 스님이라서 자손이 없어 왕희지의 작품들이 영원히 사라지게 만든 장본인으로 알려져있다.

 

불교식 절도 있다.

 

위에 여러 필사/카피 작품들이 있는 난정서 (Lantingji Xu)가 가장 유명한 왕희지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술에 거하게 취한 상태로 흘겨 갈긴 수준이라고 하지만 예술은 역시 몽롱한 상태에서 나오는지 이 작품을 다시 멀쩡한 상태에서 다시 해보려 해도 되지 않았다는 일화까지 있다. 술에 취하 글자를 좀 틀리기도 하고 (틀려서 고치거나 지우거나 한 흔적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런저런 우연이지만 왕희지하면 떠오르는 최고의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큰 연못 말고 작은 연못에는 실제로 거위를 풀어서 기르고 있다. 왕희지와 왕헌지 부자를 같이 기리기 위해서 거위의 연못이라는 뜻의 두 글자를 왕희지와 왕헌지의 글자에서 하나씩 따와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실 이 산둥성 린이는 왕희지보다 더 유명하고 존경받는 인물의 고향이기도 하다. 생가나 이런 관광지는 아마 알수 없어 특별히 개발되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누구냐 하면 삼국지의 찐주인공인 "제갈량" (Zhuge Liang)이 이 동네 출신이다. 그래서 왠만한 관광지로 개발된 곳을 가면 어디에서나 제갈량/제갈공명이 언급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물론 삼국지의 진정한 위너/승리자는 삼국의 3왕들이 아니라 사마의 (Sima Yi)와 그 자손들이지만 중국인들에게는 Sima라는 성이 가지는 이미지는 간사하고 충성스럽지 않은 거라면 Zhuge는 현명하고 충성스러운 그런 거라고 할 정도로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대에서도 엄청 존경을 받는 인물이 제갈량이다. 그의 상징이기도 한 깃털로 만든 부채를 항상 들고 있는 형상이라서 쉽게 알아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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