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체른/리기산 일정은 체르마트/고르너그라트/마터호른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한 예행연습이라고 하면 루체른과 리기를 모독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당연히 그건 아니고, 묵고 있던 숙소가 있던 베른에서 마터호른을 아침에 보려면 일정상 좀 서둘러야 해서 힘을 좀 덜 빼는 행선지를 먼저 택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2025 스위스 리기 산 (Mount Rigi Switzerland)
스위스 알프스 산악지대를 가보기 위해서 들러야 하는 거점 도시로는 루체른, 인터라켄, 그리고 체르마트가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가장 보고 싶었던 산이 마터호른 (Mattehorn)이어서 거길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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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프라우 지역은 예전에 한 번 봤기 때문에 마터호른행이 좀 더 기대가 되었던 면도 있지만 스위스 알프스를 대표하는, 아니 스위스 전체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산이 바로 마터호른 (Matterhorn)이기 때문에 갈 수 있으면 꼭 가고 싶었던 곳이다. 융프라우 지역을 예전에 가 볼 때도 단지 묵고 있던 곳에서 그나마 가까워서 거길 선택한거지 뭐가 더 나은 곳이어서 선택한 곳은 아니었던 기억이 있다.
2012 스위스 빌리겐 인터라켄 융프라우 (Villigen Interlaken Jungfrau Switzerland)
뭔가 될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추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먼 곳을 찾게 되었다. 스위스는 이번에 3번째 방문이 되는 건데 전혀 다른 곳이어서 일 때문에 지친 몸에도 불구하고 정말 없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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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마트나 그 근처에 묵을 수 있으면 아침 해가 떠오를 때 맑은 날이면 볼 수 있다는 황금색으로 물든 마터호른을 볼 수 있다는데 그 정도까진 계획을 하기는 너무 벅차서 베른에서 그래도 좀 아침 일찍 출발해 보기로 했다. 체르마트가 차로 가기가 좀 힘든 이유가 이런 저런 통과할 구간이 많아서이다. 마터호른을 보기 위한 베이스캠프라고 볼 수 있는 체르마트라는 동네 자체가 일반 차량이 들어갈 수가 없어서 그 근처에 있는 태쉬 (Täsch)라는 동네에서 차를 주차를 하고 거기서 부터 기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것도 있지만, 베른이나 그 쪽에서 차를 타고 이동할 때 태쉬까지 가는 중간에 차가 통과할 수 없는 터널을 차를 실어 나르는 기차를 타야 한다. bls에서 운영하는 Autoverlad라는 건데 베른 쪽에서 간다면 한시간 쯤 가면 칸더스탁 (Kanderstag)이란 곳에 도착한다. 여기서 터널 통과료를 내면 (2025년 초 기준 CHF28) 이렇게 차를 태워서 터널을 통과하게 해준다.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통과하면 고펜스타인 (Goppenstein)에 내려서 다시 도로를 달리면 된다. 뭔가 좀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걱정을 했지만 별로 기다리는 것 없이 잘 지나갔다.
기다리는 시간은 짧았지만 조그만 편의점 같은 것도 있고 바로 옆에 라바짜 커피자판기가 있어서 별로 저렴하진 않은 자판기 커피를 한 잔 샀다.
차 안에서 주차기어를 채운뒤 시동을 끈 채 차가 기차를 타고 가는 원리라서 자동세차장 들어갈 때와 비슷한 설명서 비슷한 것도 준다. 터널의 이름은 뢰치베르크 (Lötschberg) 이라고 하는 것 같다. 차를 타고 오면 이 이름으로 된 표지판을 잘 보고 따라오면 된다.
터널을 통과해서 기차에서 내려서 한시간 15분 정도 더 가면 태쉬의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비는 어디가나 비슷하기 때문에 이 곳을 놔두고 특별히 다른 주차장을 찾을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그런데 오기 전에 체르마트에서 고르너그라트 전망대까지 가는 기차요금을 대충 알아보고 왔는데 태쉬에서 체르마트까지는 얼마나 하는지 몰랐다. 기차를 타고 가야 하니 티켓머신에서 요금을 확인해보니 아예 태쉬부터 고르너그라트 (Gornergrat)까지 왕복하는 기차표가 있어서 그걸로 샀다. 2025년 초 기준으로 CHF113.20이다. 난 스위스패스, 하프페어패스 이런걸 사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가격은 디스카운트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가격이다. 태쉬에서 체르마트까지 가는 기차는 아직까지는 시즌이 시즌인지라 스키/보드를 타는 손님이 좀 있다. 시간 잘 맞춰서 다니는 스위스답게 시계도 많이 보이고 (오메가 사에서 후원을 하는 것 같다)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아침 10시 정도에 체르마트에서 고르너그라트로 출발하는 기차를 타려고 아침 7시에 베른에서 출발한 거였는데 정말로 예상 대로 정확히 10:24분 기차를 체르마트 역에서 탈 수 있었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 행인데 스키/보드를 가지고 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도 스키 좋아하는데 이제는 몸이 스키는 타면 안되는 상황이라 부러워만 했다. 전망대를 올라가는 고르너그라트반 (Gornergrat-Bahn)에서 좋은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서둘러 움직였다. "오른쪽" 자리에 앉으면 경치를 더 잘 볼 수 있다고 했다. 차가 없는 청정지역이라는 체르마트는 정겨운 모습이었지만 애초부터 여기에서 시간을 보낼 계획이 없었다. 체르마트에서도 마터호른이 조금 보여서 앙증맞은 기분이 든다. 아, "반"은 독일어로 기차라는 뜻이다. 기차역은 반호프 (bahnhof). 독일어를 쓰는 지역에서 기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가장 자주 마주치는 독일어이긴 하다.
체르마트 태쉬에서 온 기차가 내리는 곳에서 고르너그라트반이 출발하는 역은 바로 길 건너편에 있다.
천천히 기차가 출발을 하고 30분 정도 기차를 타면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 다다르게 된다. 가는 중간에 보이는 마터호른의 모습이 워낙에 압도적이라서 기차 타는 시간이 지겨울 새도 없다. 마터호른의 모습이 지겨우면 올라가면서 계속 보이는 스키 슬로프에서 스키와 보드를 즐기는 사람도 볼 수 있어서 볼 거리가 풍부하다.
아직 겨울이 덜 끝나서 눈이 많기 때문에 하이킹은 장비 없이는 할 수가 없지만 대개 내려가는 길에 고르너그라트 전망대 전에 있는 역인 로텐보덴 (Rotenboden)에서 하차를 한 뒤 하이킹으로 그 다음 역까지 가면 중간에 호수도 나오고 경치가 너무 좋다고 한다. 여름에 올 일이 있으면 그걸 한 번 해 봐야겠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는 높이가 3089미터라고 한다. 전날 갔던 리기산이 1800미터이니까 여기는 약간 고산병으로 머리가 좀 아파질만한 높이다. 리기산이 "예행연습"이라고 한 것도 사실은 고산병과 관련이 있다. 어쨌거나 그런식으로 조금 낮은 고도에서 훈련을 좀 했다보니 고산지역이라서 약간 느낌이 이상했지만 특별히 두통은 없어서 다행이다. 예전에 융프라우요흐에 갔을 때는 날씨가 좋지 않아 밖에서도 뭘 잘 볼 수도 없었을 뿐더러 고산병으로 머리가 너무 아파 내려가고 싶은 마음 밖에 안 들었는데 3000미터가 조금 넘는 이 곳은 "딱 좋은" 느낌이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으로 마터호른의 전망 뿐 아니라 주위의 전망을 눈과 사진으로 많이 담아왔다. 눈길이지만 역에서 내려서 한 5분 정도 걸어서 올라가면 걸어서 갈 수 있는 최고점에 도달할 수가 있다. 눈으로 덮혀진 스위스 알프스에 둘러쌓인 기분이 너무나도 좋았다. 눈이 이렇게 많이 있지만 이날은 날씨도 화창했고 춥지도 않았기 때문에 정말로 즐거운 기억이 가득하다.
점심 시간 즈음이 되었기 때문에 일타쌍피의 마음으로 전망대를 걸어다니면서 봐둔 식당으로 향했다. 11시 30분에 오픈을 하는 SayCheese!라는 곳이다. 충분히 야외 테이블에 앉아도 춥지 않아서 야외테이블을 잡고 주문을 했다. 주문은 스위스에 몇 달을 있기도 했고 몇 번이나 와봤지만 스위스 대표음식이라는 퐁듀를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 이 높은 산 전망대에서 먹어보기로 생각을 했다. 한가지 아쉬운, 아니 안타까운 점은 식당에 앉아서 여유롭게 식사를 하는 사람은 나처럼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거였다. 아마도 조금 젊으신 분들은 시간에 쫒기거나 그냥 지레짐작으로 이런 곳에 있는 식당은 가격비례해서 음식이 별로라고 생각해서 그런거 아닐까 상상을 해봤다. 난 이런 곳에 가면 뭐라도 앉아서 커피를 마시거나 음식을 먹거나 하면서 여유를 즐기려고 하는 편이다. 특히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의 이 곳은 야외테이블에 앉아서 마터호른 뷰가 있는 곳인데 안 할 이유가 없다.
여유있는 식사를 마치고 기차를 타고 하이킹은 하지 못했지만 내려가는 길이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너무 길지 않아서 더 경치가 아름다웠던 것 같다. 너무 길면 지겨울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