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조금 멀리 떠나는 여행은 나에게는 좋은 흥분제다. 매년마다 가는 학회는 최근 들어서는 꽤나 먼 곳을 떠돌고 있기 때문에 올해의 개최지인 영국의 맨체스터 여행은 꽤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문제라고 한다면 아무리 내가 처음 가보는 곳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영국, 그리고 맨체스터는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그렇게 흥미가 있는 여행지는 아니다. 조금의 썰을 풀어보자면, 영국의 근현대사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산업혁명 (Industrial Revolution)을 이끌어 나간 지역이 맨체스터라고 한다. 산업혁명의 시작은 증기기관 (Steam Engine)의 발명인데, 증기기관을 발명한 사람은 제임스 와트 (James Watt)라고 스코틀랜드 사람이다. (이번 여행 중에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에서 Watt의 이름을 보면서 무슨 와트인지 그냥 어리둥절하며 지나갔는데 바로 그 다음날 그 와트가 그 와트였다는 사실에 실소를 터트린적이 생각난다.) 산업혁명이 이뤄지면서 기술의 발달로 직물 (textile)의 생산이 획기적으로 변했는데, 직물 생산을 열심히 하던 곳이 맨체스터 지역이라고 한다.
그쪽 사람들 얘기로는 맨체스터는 이런 저런 이유로 영국의 제2의 도시 (런던 다음으로)라고 한다. 그런데 실상은 맨체스터의 인구는 영국에서 4번째라는 사실. 이것도 도시의 인구를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 광역권으로 봤을 때는 맨체스터 광역권이 런던 다음으로 하니 꼭 제2의 도시라는 표현은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
어쨌거나 여행, 관광, 뭐 이런 것으로는 산업혁명의 직물공장의 역사를 알고 싶다거나 영국 축구 리그 (English Premier League, EPL)를 대표하는 두 팀 (Manchester United FC, Manchester City FC)에 열광적인 팬이 아니라면 아주 매력적인 곳은 아니다. 여기에 오게된 사람들이 관광으로 자주 추천하는 곳은 옆 동네인 리버풀 (Liverpool)이 있다. 이번에 스코틀랜드 지역과 리버풀 방문을 할 수 있게 되어 사실 맨체스터로 가게된 것은 결국은 아주 만족스러운 기억이긴 하다.
짧은 시간을 내어서 그래도 맨체스터의 몇 군데를 둘러볼 기회는 있었기 때문에 사진을 찍어보았다.
첫날 맨체스터 공항에 도착해서 호텔로 이동을 했는데 아침 시간이라 호텔 체크인을 하려면 기다려야 했었다. 이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서 리버풀에 갔다왔다. 호텔은 모텔 원 (Motel One Royal Exchange)이라는 곳에 묵었다. 모텔원은 영국 곳곳에 있는 체인이었는데 맨체스터에는 두군데 있었다. 이름과는 다르게 모텔원은 자동차 주차가 용이한 '모텔'이 아니라 꽤나 트렌디한 비즈니스 호텔이라는 게 함정.
리버풀에 가려고 예약한 기차 시간을 기다리면서 기차역 (Manchester Victoria)에서 가까운 National Football Museum이라는 곳을 구경했다. 앙증맞은 건물의 외양과 아담한 박물관의 분위기가 흥미로웠지만 축구 하나만으로 박물관을 꾸미는게 특히 영국에서 영국 축구를 가지고 박물관을 꾸몄으니 전시물의 규모나 전시장은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다. 얼마전에 가봤던 스위스 로잔의 올림픽 박물관이 생각났었다.
맨체스터에는 큰 기차역이 두 군데 그리고 조그만 기차역이 몇 군데 더 있다. 큰 기차역은 동쪽에 있는 피카딜리 (Manchester Piccadilly)와 북쪽에 있는 빅토리아 (Victoria)인데 리버풀로 가는 급행열차는 빅토리아 역에서 출발한다. 한 40분정도면 가니까 맨체스터에 왔다면 리버풀행은 시간이나 비용면에서 충분히 가보면 좋은 곳이다.
리버풀에 갔다오고,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Edinburgh)와 글래스고 (Glasgow)를 다녀온 후 학회에 충실히 참여하다가 비가 오기전 그래도 유명한 축구팀들의 축구장을 가보고 싶어졌다. 고민을 많이 하다가 축구장 투어를 예약하는 것은 아무래도 지겨울 것 같아서 (2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그냥 축구장의 모습과 스토어를 구경하기로 생각했다. 먼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축구장이고 영국에서도 가장 유명한 축구장 중에 하나인 올드 트래포드 (Old Trafford)에 갔다.
트램 (tram)을 타고 올드 트래포드 정거장에 내렸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크리켓 경기장이었다. 지도 상으로도 트램 정거장에서 내려 꽤 걸어가는 거리라고 나와 있어서 크리켓 경기장을 지나 한 10여분 걸어갔던 것 같다. 올드 트래포드 축구경기장이 눈에 들어올 때 쯤의 거리가 시선을 확 끌었는데 그 이유는 버려진 건물과 한산하기 그지없는, 깜깜한 밤에는 아주 무서울 것 같은 분위기가 들어서였다.
그래도 축구장은 아주 거대하게 지어놓은 것이라 시선을 강탈하기에 충분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세선수 (Best, Law, Charlton)을 기리는 United Trinity 동상이 경기장 밖의 모습을 대표하는 듯하다.
유명한 곳을 가면 어떻게 보면 꼭 있어야 하는 기념품 스토어에 들어갔는데 시간이 시간인지라 많이 한산했다. 한국인 박지성 선수가 꽤 오랫동안 몸을 담은 곳인데 이제는 한국인 선수가 없으니 스토어 안에서도 한국의 기운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최고의 팀으로 끌어올린 알렉스 퍼거슨 (Alex Ferguson) 감독의 동상이 벌써 세워져 있었다. 보통 동상이라는게 생후에 주로 세워지는 편인데 워낙에 그 공로가 대단해서 그런지 퍼거슨 감독의 동상은 벌써 이 축구경기장에 세워져있었다는게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었다.
다음 행선지인 에티하드 스타디움 (Etihad Stadium)을 가기 위해서 올드 트래포드 트램 정거정이 아니라 익스체인지 키 (Exchange Quay) 트램 정거장으로 갔다.
에티하드 스타디움은 맨체스터를 대표하는 또 다른 축구팀인 맨체스터 시티 (Manchester City)의 전용경기장이다. 올드 트래포드와는 다르게 트램 정거장 (Etihad Campus)에서 내리면 바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다. 그냥 색을 고를 때 파란색 계열 보다는 빨간색 계열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에티하드 스타디움과 맨체스터 시티의 대표적인 색인 하늘색이 눈에 꽂혔다. 간단히 얘기해서 예쁘다.
축구경기장 투어, 아니 구경을 짧게 마치고 맨체스터에서 그다지 할만한 것을 못찾다가 호텔과 학회장 사이를 걸어다니면서 보던 건물들이 나름 꽤 유명한 건물인 것을 깨달았다. 시청 건물, 역사적인 호텔이라는 미들랜드 호텔 (Midland Hotel), 중앙 도서관 (Central Library), 그리고 학회장이 있던 Manchester Central Convention Complex 등. 학회장 건물은 예전 기차역이어서 그 외양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재작년에 런던에 왔을 때 알게 되었던 영국에서 (다른 유럽에서는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타벅스를 제외하고 자주 보이는 3군데의 커피숍인 Pret a Manger, Costa Coffee, Caffe Nero를 차례차례 돌아다녀본 것은 그냥 소소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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